외면 하기에는, 오페라란 너무나 매력적인 종합 예술 _백재은 작가

톰 행크스 주연의 화제작 〈필 라델피아〉. 에이즈의 막바지에 다다라 곧 죽음을 맞는 톰 행크스는 그의 부당 해고 사건을 맡은 변호사 댄젤 워싱턴에 게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리아를 설명한다. 아리아는 오 페라 「안드레아 셰니에Andrea Chénier」(1896)의 마리아 칼라스 (막달레나 역)가 부르는 ‘La mamma morta(어머니는 돌아가셨어 요)’. 초반에 아리아는 영화의 배경음악처럼 잔잔히 깔리는 듯하지만, 톰 행크스가 마리아 칼라스의 격정적인 노래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순간부터 영화를 보는 사람 역시 아리아에 함께 압도당한다. 오페라의 장면은 부모를 비롯해 모든 것을 잃은 여주인공이 잔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깨달은 인생의 숭고함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아리아는 단조에서 슬프게 시작하지만, 곧 희열이 넘치는 장조로 폭발하면서 듣는 이의 마음을 슬픔에서 희망으로 이주시킨다. 


상황은 톰 행크스의 그것과 다를지라도, 우리 모두 답 답한 현실과 마주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오페라 주인공 막달레나와 같이 숨막히도록 열정적인 사랑을 해본 적이 있거나, 그런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오페라 무대 위 주인공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인물들 같지만, 사실 그들은 다른 시대, 다른 문화의 옷을 입었을 뿐 우리와 다르지 않다. 절망의 감정이나 사랑의 감정은 시대와 나라가 달라도 모두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세상 모든 사람은, 오페라의 드넓은 세계에 빠져 함께 감동할 수 있는 잠재적인 오페라 팬들이다.


하지만 오페라는 
친절하지 않다. 


생경한 외국어로 만들어진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다. 게다가 시험을 보기 위해 책상에 앉아 졸며 외우던 역사적, 문화적 주제들로 가득하다. 내 생활과는 거리가 먼 듯한 오페라 극장에서, 조금은 불편한 옷과 구두를 갖추어 입고 앉아서 보는 ‘노력’이 필요한,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장르의 문화생활임에는 틀림이 없다. 


친절하지 않으면 
걸러야 할까.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가장 들어맞는 장르가 오페라일 것이다. 불친절하긴 해도 일단 작품에 등장하는 배경지식만 갖추면 인생의 여정을 오래 함께 할 만한 아주 특별한 친구가 되기도 한다. 한국 영화감독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은 시상식에서 관객들에게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들은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해 환호를 받은 적이 있다. 자막의 장벽을 넘으면 영화의 새 장이 열리듯, 생소하고 낯설게만 보이는 오페라의 뒷이야기들을 알게 되면, 우리에게도 새로운 오페라의 세계가 열리지 않을까.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알고 보면 21세기 우리네 사는 모습과 다르지 않은 것이 또 오페라 이야기인데. 


좀 더 많은 사람이 오페라의 감동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멀게만 느껴진다고 해서 외면 하기에는, 오페라란 너무나 매력적인 종합 예술이기 때문이 다. 길지도 않은 인생인데, 이런 감동의 기회들을 놓치고 사 는 것은 좀 억울하지 않은가. 소중한 것들은 고생 없이 얻어 지지 않는다고 하던데, 1인치 두께의 책을 읽는 것으로 오페라와 좀 더 가까워질 수만 있다면, 이것은 상당히 가성비 높은 노력이 아닐까. 나 역시 책을 쓰면서 여러 오페라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나와 음악과 오페라를 세상에 있게 한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빈들빈들 공부하던 내게 상당히 치열하고 반 강제적으로 공부의 기회를 마련해준 CPBC 라디오의 장일범 선생님과 조준형 피디님, 오페라 공연의 끈을 오래도록 이어 가게 해주신 금난새 선생님께도 감사하다. 매일 밤 원고 쓴 다고 징징거리는 나를 옆에서 즐겁게 놀려대면서도 지지를 아끼지 않은 남편, 책상 주변에서 강아지처럼 떠돌며 원고를 구경하던 아이들에게도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고 싶다. 양가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이 없었다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쓰다 보니 매사가 감사투성이이다. 비루한 글이나마 좋게 봐주어 여기까지 이끌어준 김태권 작가와 그래도봄 대표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내가 쓴 글들이 누군가에게는 흥미롭고 행복한 시간을 안겨 주길 소망한다. 글을 쓰는 동안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그만큼 행복했음에 감사한다. 


백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