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기본 권리를 짚어주는
서른 번의 인권 교양 수업
<사람이 사는 미술관>
어릴 적 아버지는 늘 새해가 되면 제 방에 새로운 달력을 걸어주셨습니다. 외국계 제약회사에서 제작한 달력에는 서양의 명화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년 7월 28일〉 등 서양미술사에서 꼭 언급되는 유명한 작품들을 제 방에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해외 여행도 자유롭지 않고, 즐길 거리라고는 TV가 전부이던 시절, 벽에 걸린 달력 속 그림을 보는 것은 저의 가장 큰 재미이자 낙이었습니다. 달력 속 그림들은 저를 세계 각국으로 안내해주는 가이드이자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오가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들어주는 재미난 친구였습니다. 그렇게 제 삶 속에 그림이 조금씩 스며들었습니다. 물론, 애호하는 마음만큼 그림을 잘 그리는 재주는 없었지만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사회에 나가 번 돈으로 처음 선택한 해외 여행지는 프랑스 파리였습니다. 이유는 딱 하나였습니다. 그곳에는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이 있었으니까요. ‘달력에서만 보던 그림들을 두 눈에 원 없이 담고 와야지!’ 그런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요? 들뜬 마음으로 도착한 여행지에서 저는 새로운 전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하면서 보고, 듣고, 현장에서 느껴왔던 모든 것이 눈앞의 그림들과 어우러져 또 다른 사유로 저를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그림에서 인권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 속 절규하는 인물들은 세월호의 기억을 끄집어냈습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년 7월 28일〉의 작가로만 알던 들라크루아가 그린 〈키오스 섬의 학살〉을 보면서는 제주 4·3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그전까지는 미학의 측면에서 그림을 좋아했다면, 이제는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그림으로 인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들라크루아의 〈키오스 섬의 학살〉은 그리스 독립에 대한 당대 지식인들의 관심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프랑코 독재가 자행한 끔찍한 국가 폭력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시대의 부조리를 포착한 어떤 그림은 사람들을 각성시키고 상황을 변화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 우리의 인권은 한 단계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합니다. 이 책을 통해 인간의 권리를 새삼 생각하게 만든 세계의 명화들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인권에 대해서 어렵지 않게 설명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인권교육 업무를 오랫동안 하면서 많은 사람이 인권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음을 몸소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림은 다양한 인권 개념을 부드럽고 쉽게 설명하기 위해 제가 선택한 매개체인 셈이지요.
책에서는 인권의 주요 개념을 ‘여성’, ‘노동’, ‘차별과 혐오’, ‘국가’, ‘존엄’ 등 크게 다섯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아직도 유리 천장이 건재한 세상에서 여성이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먹고살기 위한 노동의 현장은 어째서 목숨을 앗아가는 장소가 되어버렸는지, 차별은 어떻게 혐오로 발전하며 그 혐오가 어떠한 비극을 일으키는지, 국가가 얼마나 많은 인권유린을 자행했는지, 마지막으로 왜 인간의 존엄함은 존중받아야 하는지 등을 명화와 함께 재미있고 쉽게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각각의 원고 말미에는 ‘궁금해요’ 코너를 마련해 본문에서 언급한 인권 개념과 연관 사건들을 자세하게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이 사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저는 그림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고 인권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거나 전공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국가인권위원회의 일원으로서 인간이 천부적으로 타고나는 기본적인 권리를 현장에서 오랫동안 교육하면서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일조하는 작은 톱니바퀴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합니다. 이 책에 담은 내용들은 그 과정에서 길어 올린, 인권의 최전방에서 만난 수많은 이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입니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권리를 올바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면 저자로서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이 가진 권리를 당당히 주장할 수 있을 테니까요. 더불어서 아직은 인권이라는 개념이 낯선 성인 독자나 인권을 조금 더 흥미로운 방식으로 설명하고 싶은 교육 현장의 선생님들께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주변을 조금 다른 눈으로 살필 줄 아는 세심함을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타인에게 공감할 줄 알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줄 아는 인권 감수성 넘치는 사회가 될 때, 차별과 배제의 논리로 소외당하는 사람이 없는, 말 그대로 ‘사람 사는 세상’이 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박민경

당신의 기본 권리를 짚어주는
서른 번의 인권 교양 수업
<사람이 사는 미술관>
어릴 적 아버지는 늘 새해가 되면 제 방에 새로운 달력을 걸어주셨습니다. 외국계 제약회사에서 제작한 달력에는 서양의 명화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년 7월 28일〉 등 서양미술사에서 꼭 언급되는 유명한 작품들을 제 방에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해외 여행도 자유롭지 않고, 즐길 거리라고는 TV가 전부이던 시절, 벽에 걸린 달력 속 그림을 보는 것은 저의 가장 큰 재미이자 낙이었습니다. 달력 속 그림들은 저를 세계 각국으로 안내해주는 가이드이자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오가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들어주는 재미난 친구였습니다. 그렇게 제 삶 속에 그림이 조금씩 스며들었습니다. 물론, 애호하는 마음만큼 그림을 잘 그리는 재주는 없었지만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사회에 나가 번 돈으로 처음 선택한 해외 여행지는 프랑스 파리였습니다. 이유는 딱 하나였습니다. 그곳에는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이 있었으니까요. ‘달력에서만 보던 그림들을 두 눈에 원 없이 담고 와야지!’ 그런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요? 들뜬 마음으로 도착한 여행지에서 저는 새로운 전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하면서 보고, 듣고, 현장에서 느껴왔던 모든 것이 눈앞의 그림들과 어우러져 또 다른 사유로 저를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그림에서 인권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 속 절규하는 인물들은 세월호의 기억을 끄집어냈습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년 7월 28일〉의 작가로만 알던 들라크루아가 그린 〈키오스 섬의 학살〉을 보면서는 제주 4·3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그전까지는 미학의 측면에서 그림을 좋아했다면, 이제는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그림으로 인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들라크루아의 〈키오스 섬의 학살〉은 그리스 독립에 대한 당대 지식인들의 관심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프랑코 독재가 자행한 끔찍한 국가 폭력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시대의 부조리를 포착한 어떤 그림은 사람들을 각성시키고 상황을 변화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 우리의 인권은 한 단계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합니다. 이 책을 통해 인간의 권리를 새삼 생각하게 만든 세계의 명화들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인권에 대해서 어렵지 않게 설명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인권교육 업무를 오랫동안 하면서 많은 사람이 인권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음을 몸소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림은 다양한 인권 개념을 부드럽고 쉽게 설명하기 위해 제가 선택한 매개체인 셈이지요.
책에서는 인권의 주요 개념을 ‘여성’, ‘노동’, ‘차별과 혐오’, ‘국가’, ‘존엄’ 등 크게 다섯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아직도 유리 천장이 건재한 세상에서 여성이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먹고살기 위한 노동의 현장은 어째서 목숨을 앗아가는 장소가 되어버렸는지, 차별은 어떻게 혐오로 발전하며 그 혐오가 어떠한 비극을 일으키는지, 국가가 얼마나 많은 인권유린을 자행했는지, 마지막으로 왜 인간의 존엄함은 존중받아야 하는지 등을 명화와 함께 재미있고 쉽게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각각의 원고 말미에는 ‘궁금해요’ 코너를 마련해 본문에서 언급한 인권 개념과 연관 사건들을 자세하게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이 사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저는 그림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고 인권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거나 전공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국가인권위원회의 일원으로서 인간이 천부적으로 타고나는 기본적인 권리를 현장에서 오랫동안 교육하면서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일조하는 작은 톱니바퀴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합니다. 이 책에 담은 내용들은 그 과정에서 길어 올린, 인권의 최전방에서 만난 수많은 이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입니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권리를 올바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면 저자로서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이 가진 권리를 당당히 주장할 수 있을 테니까요. 더불어서 아직은 인권이라는 개념이 낯선 성인 독자나 인권을 조금 더 흥미로운 방식으로 설명하고 싶은 교육 현장의 선생님들께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주변을 조금 다른 눈으로 살필 줄 아는 세심함을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타인에게 공감할 줄 알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줄 아는 인권 감수성 넘치는 사회가 될 때, 차별과 배제의 논리로 소외당하는 사람이 없는, 말 그대로 ‘사람 사는 세상’이 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박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