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딸,
자라서 무엇이든 되겠지
“생각하는 것, 보고 있는 것, 마주친 것,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스로 알기 위해 글을 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그것의 실체를 마주하기 위해 글을 쓴다.”
조앤 디디온의 《푸른 밤》을 읽고부터 내가 낳은 딸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딸이 떠난 뒤 조앤 디디온이 써 내려간 애절하고 서늘한 그 기억의 글들. 그때부터였다.
“나는 내 아이의 얼굴을 암기한다. 내가 암기한 것은 생의 여러 시점에서의 내 딸의 얼굴이다.”
#1
딸들과 좋은 친구라는 생각을 오래 하고 살았다. 거대한 착각이었다. 그게 자랑거리였다. 딸들이 나를 진정 좋아하고 사랑할 거라고 믿고 살았다. “우리는 이렇게나 서로를 모른다니까.” 별일도 아닌 사소한 기억 몇 개가 달랐을 뿐인데 슬쩍 지나가면서 한 딸아이 말이 꽤 오래 남았다. 못 할 말 전혀 없는 친구라거나, 속속들이 사랑한다거나, 마음속 비밀까지 잘 알고 있다거나… 하지만 그런 건 엄마와 딸 사이에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번쩍 깨달았다. 딸과 엄마 사이는 끊을 수 없는 깊은 애정 관계가 틀림없다는 애달픈 착각에서 깨어나려는 가당한 노력은, 실로 지지부진했다. 더 끊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애써왔는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이 하나둘 지상에서 사라지면서 딸을 친구 삼으려고 아부하고 집착하고 참견하고 외로운 사람인 척, 아무것도 잘하지 못하는 모자란 사람인 척하고 붙들고 살았던 건 아니었을까.
#2
꽤 젊었을 때 빈둥지증후군(empty nest syndrome)이란 말을 들었다. 그때만 해도 딸들이 자라 독립해서 집을 떠나면 슬픔과 외로움, 상실감을 격하게 겪을 거라고, 빈둥지증후군 환자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웬걸. 아기 새들은 이제 어른 새가 되어도 둥지를 떠나지 않는다. 집을 떠나지 못한다. 몸이 커지고 생각이 넓어져 둥지가 비좁아져도 새 둥지를 구할 수가 없어서 엄마 새 곁에서 한데 뭉쳐 같이 산다. 둥지를 떠날 수 없고 독립도 할 수가 없어 엄마에게 빈둥지증후군을 앓을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육십갑자 한 바퀴가 다 되어가는 우리 또래 엄마들은 빈둥지증후군조차 느낄 수 없이 캥거루족 자식을 껴안고 성인 육아의 덫에 걸려 있다. 다 큰 자식을 애잔하게 가슴에 품고 한집에 담기어 밥을 해먹이며, 받아먹으며 살고 있다. 어쩌면 딸들이 모이를 가져다 엄마를 먹이는 것일 수도 있겠다.
딸들은 연애도 결혼도 독립도 하고 싶거나, 하지 않고 싶거나, 못하거나, 안 했다. 딸 대신 종종 내가 떠나거나 독립을 했다. 밥 먹듯이 가출하는 엄마가 된 것이, 독립하지 않는 딸이 되어 사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었다. 불행했다거나 슬픈 일도 물론 아니다.
#3
아이들이 소녀인 시절에 둘 다 ‘프린세스메이커’ 게임을 했었다. 여자아이, 즉 딸을 기르는 게임이다. 다마고치를 기르고, 병아리와 강아지를 기르다 모두 실패하고 서글프게 떠나보낸 기억을 간직한 딸들은 컴퓨터에서 여자아이를 길러 무언가가 되게 하는 이른바 육성(育成) 게임을 좋아했다. 어린 딸이 모니터 속 딸을 키우면서 자기들 미래를 설계했다. 키운 딸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힘든 일을 겪으면 가슴 아파했다. 모니터 속 딸은 공부하고 일하고 놀고 심신의 발전을 도모하며 자라났다. 그리고 마침내는 꼭 무언가가 되는 엔딩이 있었다.
두 딸이 하는 게임 속 딸은, 아무튼 딸로서 자라나 끝끝내 무언가가 되었다. 얼마만큼 돈을 쓰고 얼마만큼 공부를 시키고 어떤 성격을 가질 수 있게 독려하고, 무슨 일을 할 수 있게 채근하고, 어느 부분에 어떤 감수성을 가져야 좋을지 선택하느냐에 따라 딸아이가 키우는 딸은 다른 엔딩을 맞았다.
“오늘은 무엇이 되었어?” 진짜 딸의 미래를 점치듯이 물어보면 어느 날은 수녀가, 어느 날은 마법사가, 언젠가는 프린세스가 되었다. 딸들은 무언가가 된 딸의 성장 과정을 말했다. 돈을 벌어야 해서 ‘알바’만 시켰더니 직업이 알바생이 되었어. 공부만 열심히 시켰더니 박사가 되었어. 운동을 시켰더니 무사가 되었어. 매력을 갖게 했더니 프린세스가 되었어.
이 게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도 그래도 좋았던 것은, 무엇이 되던 ‘딸’이 뭔가가 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엔딩의 주인공이 아들이 아니라 여자의, 딸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좋았다. 국왕이든 재상이든 대신이든 하다못해 하녀든 전사든 거리의 광대든 주인공은 딸, 미래의 딸들 모습이 되었다. 좋은 엔딩 중에 최고는 국왕(여왕이 아니라)인데, 그렇게 되려면 지능이 높아야 하고 신앙심이 깊어야 하며, 도덕심과 감수성 지수까지 높고 충실해야 했다. 무엇이든 좋은 사람이 되려면 여러모로 훌륭하게 자라야 했다. 나쁜 엔딩에는 ‘업보 엔딩’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생래적으로 업보가 높고 도덕심마저 없고 지능이 꽝이고 성실하게 자라지 않으면 사기꾼, 건달, 접대부가 되었다. 핏빛 가득한 무늬를 온몸에 새긴 마왕이 될 수도 있었다. 딸들은 자라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게임의 세계관은 진짜 엄마인 내가 봐도 새롭고 놀라웠다.
#4
세월이 흘렀다. 딸들은 프린세스메이커 게임을 졸업했다. 여러 엔딩을 보고 저희들 스스로 무언가가 되기 위해 바빠졌다. 아이들은 손댈 수 없는 곳으로 멀리 갔다. 뭔가가 되기 위해 온 하루를 학교에서 보냈다. 감수성을 키우고 매력도를 높이고 지능을 올리면서 공부하느라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다. 게임 속에서 이것도 되어보고 저것도 되어보던 딸들은 스스로를 키워 지금 무엇이 되었나. 효녀? 학사? 은행원? 금융인? 영화인? 그냥 직장인? 사회복지사? 도서관 사서? 공인중개사? 메갈리아? 페미니스트? 누군가의 여자친구? 애인? 엄마? 딸들의 엔딩은 엔딩이랄 수 없다. 아무튼 뭔가가 되었고 앞으로도 뭔가가 될 테니까. 그 옛날 게임 속 엔딩처럼 조금씩 마음을 바꾸고 상황을 바꾸고 어떤 열심을 내는가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어쩌면 생각지도 않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무언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게임에도 수백 가지 엔딩이 있었으니까, 현실의 엔딩을 미리 정하지 않을 테니까.
#5
딸들과 함께 엇갈리듯, 같이 가듯 매일 저녁 만 보씩 걸은 지 2년이 되었다. 한파주의보도 폭염주의보도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한강에 가고 여름이면 배드민턴을 치고 겨울이면 고개를 젖히고 눈을 받아먹었다. 매달 보름달을 보면 아직도 미륵이는 할머니처럼 정성스런 기도를 하고 무던이는 길고양이 밥을 주고 물을 주려고 풀숲을 살펴본다. 걸어서 걸음 수대로 번 돈으로 치킨을 사 먹고 커피를 서로 선물한다. 난 무선이어폰을 끼고 영어공부를 하고 무던이는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고 미륵이는 새 영화를 보거나 새로 들은 노래를 들으며 걸어간다. 무언가가 되기는 했고, 아직도 무언가가 되려는 중인 내게 어느덧 기둥이자 버팀목이자 비빌 언덕이 되어버린 내 딸들에게 부끄러움과 반성과 애정이 오간다. 딸들은 넥스트 레벨로 같이 가자고 어나더 레벨이 되자고 작은 손을 내민다. 나는 두꺼운 손을 내밀어 그 손을 잡는다.
#6
옥탑방에서 하루 열 걸음만 겨우 걸으면서, 진통제를 삼키면서 딸 이야기를 썼다. 이것은 유언장인가. 이걸 쓰는 것이 과연 누굴 위해서일까. 볼 사람은 누구일까. 왜 딸들의 이야기를 쓰려고 앉기만 하면 어금니가 욱신거리는가. 왜 잇몸이 들뜨는가. 사춘기 딸들보다 혹독하게 엄마라는 인간이 끊임없이 질풍노도의 날들을 살았던 것이 참으로 미안했다. 이토록 철딱서니 없는 나라는 인간을 아직도 귀여워하고 사랑하고 보살피는 내 딸들이 너무나 귀하고 자랑스러웠다. 이상하다. 딸들의 이야기는 흉을 보겠다고 써도 자랑하는 것처럼 보였고, 내 이야기는 쓰면 쓸수록 흉잡히는 기록에 불과해 보였다.
아무 데도 안 나가고 성실하게 사는 딸 대신 독립을 외치면서 엄마가 집을 나가 생활했다. 딸을 키웠으니 나도 커야겠다고 흔들흔들 걸어 다녔다. 그 세월이 10년이 넘었다. 남들은 멋지게 여행생활자가 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 이름 있는 자가 돼가는데 민망하고 면구쩍게 ‘가출생활자’로 살았다. 딸들은 훌륭한 단독자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이 충분한 독립가능자로 자라났다. 그런데 왜 90년대생 딸들이 ‘독립불(가)능자’가 되었을까. 나는 돌아와 더 이상 가출할 필요가 없게 되었는데 왜 딸들은 독립할 수 없게 되었나.
성실하게 살았으나 부자가 되지 못한 엄마는 집을 구해줄 수가 없다. 아무리 개미처럼 돈을 벌어도 딸들은 집을 살 수 없다. 혼자는 살 수 없게 저 바깥세상은 위험하고 험악하다. 좋은 사람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려 해도 나쁜 사람이 너무 많아 관계 맺기도 꺼려진다. 곳곳이 허방이고 지뢰인 세상으로 밀어낼 수가 없다. 마음을 열고 넓고 깊게 사람을 만나려 해도 세상의 나쁜 일이 운 좋게 피해갈지 알 수가 없다. 성큼성큼 뚜벅뚜벅 무언가 되는 길로 걸어온 발걸음 앞에 놓인 선택지가 좁고 가파른 낭떠러지 같아 지금은 멈출 수밖에.
그래서 우리는 두리번거리며 한집에서 서로를 키우고 돌보고 있다. 딸들은 내게 책을 사주고 인터넷 강의를 열어주고 학점을 따게 한다. 끊어진 경력을 잇게 하고 멈춘 연금을 새로 열어 그 돈을 붓고 있다. 어엿한 예술인 아니냐며 예술인카드를 만들어주고 글을 쓸 수 있도록 작업실을 얻어준다. 끊어진 경력, 끊긴 돈, 끊어진 인간관계를 딸들이 잇는다. 깁는다. 메운다. 딸들 덕분에 나는 이어지고 기워지고 때워져서, 이 세상의 한 사람의 몫을 해내게 만든다. 나는 그냥, 이대로 사라져도, 뒷마무리는 걱정할 게 없어졌다. 집에서도 출가한 것처럼 나는 살 수 있고 집에 살면서도 딸들은 이미 독립을 이룩했을 수도 있겠다.
2021년,
권혁란

“생각하는 것, 보고 있는 것, 마주친 것,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스로 알기 위해 글을 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그것의 실체를 마주하기 위해 글을 쓴다.”
조앤 디디온의 《푸른 밤》을 읽고부터 내가 낳은 딸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딸이 떠난 뒤 조앤 디디온이 써 내려간 애절하고 서늘한 그 기억의 글들. 그때부터였다.
“나는 내 아이의 얼굴을 암기한다. 내가 암기한 것은 생의 여러 시점에서의 내 딸의 얼굴이다.”
#1
딸들과 좋은 친구라는 생각을 오래 하고 살았다. 거대한 착각이었다. 그게 자랑거리였다. 딸들이 나를 진정 좋아하고 사랑할 거라고 믿고 살았다. “우리는 이렇게나 서로를 모른다니까.” 별일도 아닌 사소한 기억 몇 개가 달랐을 뿐인데 슬쩍 지나가면서 한 딸아이 말이 꽤 오래 남았다. 못 할 말 전혀 없는 친구라거나, 속속들이 사랑한다거나, 마음속 비밀까지 잘 알고 있다거나… 하지만 그런 건 엄마와 딸 사이에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번쩍 깨달았다. 딸과 엄마 사이는 끊을 수 없는 깊은 애정 관계가 틀림없다는 애달픈 착각에서 깨어나려는 가당한 노력은, 실로 지지부진했다. 더 끊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애써왔는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이 하나둘 지상에서 사라지면서 딸을 친구 삼으려고 아부하고 집착하고 참견하고 외로운 사람인 척, 아무것도 잘하지 못하는 모자란 사람인 척하고 붙들고 살았던 건 아니었을까.
#2
꽤 젊었을 때 빈둥지증후군(empty nest syndrome)이란 말을 들었다. 그때만 해도 딸들이 자라 독립해서 집을 떠나면 슬픔과 외로움, 상실감을 격하게 겪을 거라고, 빈둥지증후군 환자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웬걸. 아기 새들은 이제 어른 새가 되어도 둥지를 떠나지 않는다. 집을 떠나지 못한다. 몸이 커지고 생각이 넓어져 둥지가 비좁아져도 새 둥지를 구할 수가 없어서 엄마 새 곁에서 한데 뭉쳐 같이 산다. 둥지를 떠날 수 없고 독립도 할 수가 없어 엄마에게 빈둥지증후군을 앓을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육십갑자 한 바퀴가 다 되어가는 우리 또래 엄마들은 빈둥지증후군조차 느낄 수 없이 캥거루족 자식을 껴안고 성인 육아의 덫에 걸려 있다. 다 큰 자식을 애잔하게 가슴에 품고 한집에 담기어 밥을 해먹이며, 받아먹으며 살고 있다. 어쩌면 딸들이 모이를 가져다 엄마를 먹이는 것일 수도 있겠다.
딸들은 연애도 결혼도 독립도 하고 싶거나, 하지 않고 싶거나, 못하거나, 안 했다. 딸 대신 종종 내가 떠나거나 독립을 했다. 밥 먹듯이 가출하는 엄마가 된 것이, 독립하지 않는 딸이 되어 사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었다. 불행했다거나 슬픈 일도 물론 아니다.
#3
아이들이 소녀인 시절에 둘 다 ‘프린세스메이커’ 게임을 했었다. 여자아이, 즉 딸을 기르는 게임이다. 다마고치를 기르고, 병아리와 강아지를 기르다 모두 실패하고 서글프게 떠나보낸 기억을 간직한 딸들은 컴퓨터에서 여자아이를 길러 무언가가 되게 하는 이른바 육성(育成) 게임을 좋아했다. 어린 딸이 모니터 속 딸을 키우면서 자기들 미래를 설계했다. 키운 딸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힘든 일을 겪으면 가슴 아파했다. 모니터 속 딸은 공부하고 일하고 놀고 심신의 발전을 도모하며 자라났다. 그리고 마침내는 꼭 무언가가 되는 엔딩이 있었다.
두 딸이 하는 게임 속 딸은, 아무튼 딸로서 자라나 끝끝내 무언가가 되었다. 얼마만큼 돈을 쓰고 얼마만큼 공부를 시키고 어떤 성격을 가질 수 있게 독려하고, 무슨 일을 할 수 있게 채근하고, 어느 부분에 어떤 감수성을 가져야 좋을지 선택하느냐에 따라 딸아이가 키우는 딸은 다른 엔딩을 맞았다.
“오늘은 무엇이 되었어?” 진짜 딸의 미래를 점치듯이 물어보면 어느 날은 수녀가, 어느 날은 마법사가, 언젠가는 프린세스가 되었다. 딸들은 무언가가 된 딸의 성장 과정을 말했다. 돈을 벌어야 해서 ‘알바’만 시켰더니 직업이 알바생이 되었어. 공부만 열심히 시켰더니 박사가 되었어. 운동을 시켰더니 무사가 되었어. 매력을 갖게 했더니 프린세스가 되었어.
이 게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도 그래도 좋았던 것은, 무엇이 되던 ‘딸’이 뭔가가 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엔딩의 주인공이 아들이 아니라 여자의, 딸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좋았다. 국왕이든 재상이든 대신이든 하다못해 하녀든 전사든 거리의 광대든 주인공은 딸, 미래의 딸들 모습이 되었다. 좋은 엔딩 중에 최고는 국왕(여왕이 아니라)인데, 그렇게 되려면 지능이 높아야 하고 신앙심이 깊어야 하며, 도덕심과 감수성 지수까지 높고 충실해야 했다. 무엇이든 좋은 사람이 되려면 여러모로 훌륭하게 자라야 했다. 나쁜 엔딩에는 ‘업보 엔딩’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생래적으로 업보가 높고 도덕심마저 없고 지능이 꽝이고 성실하게 자라지 않으면 사기꾼, 건달, 접대부가 되었다. 핏빛 가득한 무늬를 온몸에 새긴 마왕이 될 수도 있었다. 딸들은 자라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게임의 세계관은 진짜 엄마인 내가 봐도 새롭고 놀라웠다.
#4
세월이 흘렀다. 딸들은 프린세스메이커 게임을 졸업했다. 여러 엔딩을 보고 저희들 스스로 무언가가 되기 위해 바빠졌다. 아이들은 손댈 수 없는 곳으로 멀리 갔다. 뭔가가 되기 위해 온 하루를 학교에서 보냈다. 감수성을 키우고 매력도를 높이고 지능을 올리면서 공부하느라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다. 게임 속에서 이것도 되어보고 저것도 되어보던 딸들은 스스로를 키워 지금 무엇이 되었나. 효녀? 학사? 은행원? 금융인? 영화인? 그냥 직장인? 사회복지사? 도서관 사서? 공인중개사? 메갈리아? 페미니스트? 누군가의 여자친구? 애인? 엄마? 딸들의 엔딩은 엔딩이랄 수 없다. 아무튼 뭔가가 되었고 앞으로도 뭔가가 될 테니까. 그 옛날 게임 속 엔딩처럼 조금씩 마음을 바꾸고 상황을 바꾸고 어떤 열심을 내는가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어쩌면 생각지도 않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무언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게임에도 수백 가지 엔딩이 있었으니까, 현실의 엔딩을 미리 정하지 않을 테니까.
#5
딸들과 함께 엇갈리듯, 같이 가듯 매일 저녁 만 보씩 걸은 지 2년이 되었다. 한파주의보도 폭염주의보도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한강에 가고 여름이면 배드민턴을 치고 겨울이면 고개를 젖히고 눈을 받아먹었다. 매달 보름달을 보면 아직도 미륵이는 할머니처럼 정성스런 기도를 하고 무던이는 길고양이 밥을 주고 물을 주려고 풀숲을 살펴본다. 걸어서 걸음 수대로 번 돈으로 치킨을 사 먹고 커피를 서로 선물한다. 난 무선이어폰을 끼고 영어공부를 하고 무던이는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고 미륵이는 새 영화를 보거나 새로 들은 노래를 들으며 걸어간다. 무언가가 되기는 했고, 아직도 무언가가 되려는 중인 내게 어느덧 기둥이자 버팀목이자 비빌 언덕이 되어버린 내 딸들에게 부끄러움과 반성과 애정이 오간다. 딸들은 넥스트 레벨로 같이 가자고 어나더 레벨이 되자고 작은 손을 내민다. 나는 두꺼운 손을 내밀어 그 손을 잡는다.
#6
옥탑방에서 하루 열 걸음만 겨우 걸으면서, 진통제를 삼키면서 딸 이야기를 썼다. 이것은 유언장인가. 이걸 쓰는 것이 과연 누굴 위해서일까. 볼 사람은 누구일까. 왜 딸들의 이야기를 쓰려고 앉기만 하면 어금니가 욱신거리는가. 왜 잇몸이 들뜨는가. 사춘기 딸들보다 혹독하게 엄마라는 인간이 끊임없이 질풍노도의 날들을 살았던 것이 참으로 미안했다. 이토록 철딱서니 없는 나라는 인간을 아직도 귀여워하고 사랑하고 보살피는 내 딸들이 너무나 귀하고 자랑스러웠다. 이상하다. 딸들의 이야기는 흉을 보겠다고 써도 자랑하는 것처럼 보였고, 내 이야기는 쓰면 쓸수록 흉잡히는 기록에 불과해 보였다.
아무 데도 안 나가고 성실하게 사는 딸 대신 독립을 외치면서 엄마가 집을 나가 생활했다. 딸을 키웠으니 나도 커야겠다고 흔들흔들 걸어 다녔다. 그 세월이 10년이 넘었다. 남들은 멋지게 여행생활자가 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 이름 있는 자가 돼가는데 민망하고 면구쩍게 ‘가출생활자’로 살았다. 딸들은 훌륭한 단독자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이 충분한 독립가능자로 자라났다. 그런데 왜 90년대생 딸들이 ‘독립불(가)능자’가 되었을까. 나는 돌아와 더 이상 가출할 필요가 없게 되었는데 왜 딸들은 독립할 수 없게 되었나.
성실하게 살았으나 부자가 되지 못한 엄마는 집을 구해줄 수가 없다. 아무리 개미처럼 돈을 벌어도 딸들은 집을 살 수 없다. 혼자는 살 수 없게 저 바깥세상은 위험하고 험악하다. 좋은 사람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려 해도 나쁜 사람이 너무 많아 관계 맺기도 꺼려진다. 곳곳이 허방이고 지뢰인 세상으로 밀어낼 수가 없다. 마음을 열고 넓고 깊게 사람을 만나려 해도 세상의 나쁜 일이 운 좋게 피해갈지 알 수가 없다. 성큼성큼 뚜벅뚜벅 무언가 되는 길로 걸어온 발걸음 앞에 놓인 선택지가 좁고 가파른 낭떠러지 같아 지금은 멈출 수밖에.
그래서 우리는 두리번거리며 한집에서 서로를 키우고 돌보고 있다. 딸들은 내게 책을 사주고 인터넷 강의를 열어주고 학점을 따게 한다. 끊어진 경력을 잇게 하고 멈춘 연금을 새로 열어 그 돈을 붓고 있다. 어엿한 예술인 아니냐며 예술인카드를 만들어주고 글을 쓸 수 있도록 작업실을 얻어준다. 끊어진 경력, 끊긴 돈, 끊어진 인간관계를 딸들이 잇는다. 깁는다. 메운다. 딸들 덕분에 나는 이어지고 기워지고 때워져서, 이 세상의 한 사람의 몫을 해내게 만든다. 나는 그냥, 이대로 사라져도, 뒷마무리는 걱정할 게 없어졌다. 집에서도 출가한 것처럼 나는 살 수 있고 집에 살면서도 딸들은 이미 독립을 이룩했을 수도 있겠다.
2021년,
권혁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