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거지 불안에 시달리는 이 땅의 모든 성실한 노동자들과 공유하고픈 이야기 _지해랑 작가

지독한 짝사랑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끝없는 허기.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집착하면 할수록 더 잡히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집착하고 매달리다 결국 시궁창에 처박히는 듯한 참담함, 그러면서도 멈춰지지 않는 마음을 말이다. 아, 이 거창한 말들이 전부 크고 위대하고 숭고한 사랑에 대한 것이라면 좋으련만, 잡으면 어느새 날아가 버리고 마는 한없이 가벼운 돈에 관한 이야기라니. 이런 현실에 또 한 번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삶에는 돈보다 더한 가치가 있을 거라며 돈, 돈, 돈 하며 살지는 않겠다는 게 20대부터 입버릇처럼 해오던 말이었건만, 지금까지 생의 반을 몸 바쳐온 사회생활 경험을 돌아보니 한마디로 ‘돈 벌겠다고 아등바등 살았다’고 밖에는 요약이 안 된다. 그 결과 돈을 많이 벌었다면 참 좋았으련만, 그도 아니니 이건 잘못되어도 뭔가 한참 잘못된 게 분명하다.

‘돈을 좇는다면서 나는 왜 늘 가난으로 가는 길을 선택해왔을까?’

뜬금없는 자각과 함께 돈을 좇으며 헛발질을 해온 시간들이 영화처럼 지나간다. 돈을 벌겠다면서 벌인 숱한 일들 이 눈앞에 스친다. 골목길 옆 작은 연립이 재개발돼 어엿한 대단지 캐슬로 들어선 내 첫 신축 아파트를 냅다 팔아버렸고, 돈을 많이 벌겠다고 사이버 작가 소리까지 들으며 밤낮으로 일을 몇 개씩 겹치기했지만, 그 탓에 내게 일을 줄 좋은 동업자들을 잃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과소비 본능을 제어하지 못하고 쓸데없는 물건들을 집 안에 쟁여두느라 통장 잔고를 바닥냈으며, 쉼 없이 일해서 몸 아프다고 한약 먹고 병원 가고 결국 또 그 돈을 갚아야 하는, 과소비와 중노동의 악순환을 계속해 왔다.

나란 인간은 어쩌면 이렇게 모순적인가. 돈, 돈, 돈 하는 건 천박한 자본주의라면서 돈을 터부시하면서도 내가 버는 돈이 내 가치를 증명한다며 쉼 없이 돈을 좇고, 돈을 좇으면서도 돈을 벌기보다 가난해지는 길을 택해 걸어온 삶이라니.

이제 이런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야겠다. 늘 돈, 돈, 돈 하면서 돈, 돈, 돈 하는 건 나쁘다고 생각하는 양가감정부터 버리기로 했다. 있는 사람, 아는 사람이 더 벌고 더 많이 갖는 시대에 여전히 돈은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드는 일이라고, 성실히 일하고 안쓰고 모으다 보면 큰돈이 되고 그 돈이 저절로 자가발전해 큰 자산으로 돌아올 거라는 어리석은 판타지도 다 떨쳐버리자. 달라진 시대에 발맞춰 돈에 대한 생각을 다시 정립해보기로했다. 돈이 무엇인지, 나는 왜 ‘돈 밝히는 작가’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일을 해댔지만 집 한 채 소유하지 못한 전세난민이 됐는지, 끊임없이 갖고 싶고 쌓아두고 싶은 돈에 대한 이 허기진 마음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진짜 공부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 그리하여 누구나 꿈꾼다는 경제적 독립과 조기 은퇴, 이른바 파이어족의 길을 걸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내 인생 처음으로 ‘돈에 관한 탐색’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그시작은 남들 다 한다는 주식(!)으로 정했다. 오래 묵혔던 계좌를 다시 열고, 돈 벌게 해준다는 열혈 유튜버들의 목소리에 중독이 되고 오르락내리락 사람을 홀리는 붉고 푸른 봉들을 쫓았다. 돈은 들어오기도 했고 나가기도 했고 머무르기도 했다. 그리고 돈을 탐색하는 사이, 나는 알았다. 돈에 대해 탐색하면 할수록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책은 초보 돈 탐색자의 아직 끝나지 않은 자잘한 실패와 성공의 기록이며, 이대로 가만있다가는 벼락거지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는 이 땅의 모든 성실한 노동자들과 공유하고픈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