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또 우리 모두의 이야기 _김보영 작가

내가 세 아이의 엄마라니,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주민등록등본을 떼거나, 공영주차장에서 다자녀 할인 혜택을 받을 때면 ‘내가 애가 셋이었지’ 깨닫고는 새삼 놀란다. 


결혼을 하고 이듬해 첫째 아이를 낳았다. 4년 뒤 둘째가 생겼고 8년 동안 나는 딸 둘의 엄마였다. 애가 둘인데도 “셋째는 안 갖느냐?”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었다. 딸만 둘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딸만 둘인 게 뭐가 어때서? 게다가 나는 워킹맘이었다. 일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것도 벅찼다. 그나마 친정 엄마의 도움이 없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셋째를 갖게 되리라고 상상도 해본 적 없었는데, 늦은 나이에 임신을 했다. 당시 우리 식구는 미국 샌디에이고에 머물고 있었다. 남편이 미국 UCSD에서 연구교수로 2년 간 일하게 됐기 때문이다. 나는 13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같은 대학 커뮤니케이션 학부의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국땅을 밟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도착해서 받은 첫 인상은 ‘땅이 넓어도 너무 넓구나’였다. 서울에서 흔히 보던 고층 빌딩 하나 없이 야트막한 단층 건물이 띄엄띄엄 자리한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이후 6개월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보냈다. 집을 구하고 차를 사고 아이들을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키는 모든 과정이 전에 없던 도전이었다. 평일 에는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준 뒤 연구실에 출근해 논문을 읽었다. 오랜만에 하는 공부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웠다. 미국 연수는 열심히 일한 덕에 얻은 안식년 같았다.


그렇게 꿈 같은 시간을 보내던 중 셋째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였다. 몇 년 있으면 완경이 가까울 나이에 무슨 일인지 당황스럽기만 했다. 남편은 달랐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남편은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솔이, 진이 키울 때 바빠서 육아에 기여를 많이 못했잖아. 그래서 얻은 기회인 것 같아. 이제라도 제대로 부모노릇 좀 해보라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두 딸은 친정 엄마가 다 키워주신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리 부부는 결혼 후 7년 반 동안 친정집에 얹혀 살며 밤낮으로 아이들을 맡기고 각자 일에 몰두했었다. 어쩌면 이번에는 제대로 엄마가 될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일을 계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 할 계획들이 풍선처럼 뻥뻥 터져나가는 순간이었다.


“그럼 나 일은 어떻게 해? 한국 가면 다시 일해야 할 텐데. 그리고 논문도 써야 하는데, 계속 연구할 수 있을까?” 


지도 교수님 얼굴이 떠올랐다.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하나. 공부하겠다고 일까지 그만두고 미국까지 와서 임신이라니. 그것도 마흔이 넘은 나이에. 얼굴이 홧홧했다. 임신은 축복과 동시에 부담이다. 특히 여성에게 그렇다. 지난 두 번의 임신, 출산으로 겪은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임신 사실을 회사에 알릴 때마다 나도 모르게 굽어가던 어깨, 기어들어가던 목소리. 남자들은 평생 겪을 일 없는, ‘아무 잘못 없이 죄지은 것 같은 기분’을 다시 겪어야 하다니, 착잡했다.


“임신한 게 뭐 잘못이야? 뭐가 어때. 교수님께 말할 때 혼자 가기 그러면 내가 같이 가줄 테니 걱정하지 마.”


제 일이 아니라고 남편은 마냥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랐다. 내심 얄밉다가도 반대로 반기지 않았다면 더 서운했을 거라 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일이 대수일까 싶기도 했다.


아기는 분명 축복이다. 지금도 임신을 소원하는 수많은 부부를 생각하면 길게 고민하는 것조차 죄일 것이다. 늦은 나이에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 더구나 타지에서 임신과 출산의 모든 과정을 무난히 치를 수 있을지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일단은 기뻐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특히 사춘기에 접어든 첫째는 띠동갑 동생의 등장을 반기지 않았다. 그런 아이를 타이르기도 나무라기도 여러 번. 막내가 두 돌이 지난 지금 에서야 큰아이의 마음을 이해한다. 이제 겨우 중학생인데, 막내의 탄생으로 졸지에 어른 취급을 받는 게 억울했을 것이다.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모든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서운했을 것이다. 아직 어린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이해를 바라고 강요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첫째에게는 모든 것이 서툰 엄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젖을 물리는 것도, 목욕을 시키는 것도, 학부모가 되는 것도, 사춘기 딸의 엄마가 되는 것도 모두 처음 경험하는 일 아닌가. 첫째의 육아는 둘째, 셋째에 앞서 겪는 연습 게임과 같다. 그러므로 첫째 아이에게 더 많이 기대하고, 욕심 내고, 실수하고, 후회한다. “신이 어느 곳에나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내가 그만큼 아이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고 있는지 반성한다. 좋은 엄마가 되는 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은 셋째가 태어난 뒤 육아에 지칠 때마다 끄적인 글들을 모은 것이다. 모아보니 어쩌면 이리도 힘든 순간이 많았는 지 새삼스럽다. 혹자는 “저 혼자 애 낳고 키우냐, 생색이 과하다”라고 할지 모르지만 출산과 육아는 웬만한 남자들의 군대 모험담 그 이상이다. 일어나 잠들기 전까지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 나는 없고 오직 아이만 존재하는 것 같아 괴로웠다. 하루 종일 방과 욕실 이외에 움직일 곳이 없다는 게 가슴이 메도록 답답했다. 아이가 너무 예뻐 죽을 것만 같다가도 이 아이 때문에 내 인생이 사그라지는구나 싶어 원망스러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는 이 감정들이 출산 후 흔히 겪는 산후우울감, 혹은 산후우울증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신생아를 키우는 많은 산모가 산후우울증을 겪는다고 한다. 엄마니까 마땅히 견뎌야 한다는 말은 또 다른 이름의 폭력이다. 산후우울증은 심각한 질병이다. 만일 비슷한 경험으로 현재 어려움 을 겪고 있다면 반드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 바란다.


이 책은 우리 가족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또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고령 임신과 출산이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닌 시대이기 때문이다. 특히 남편이 난임 전문의다 보니 아이를 갖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난임 부부의 사연이 남의 일 같지 않다. 마흔둘에 아이를 낳고 키우는 나의 비루한 경험담이 임신을 계획하거나 출산을 앞둔 부부들에게 미약하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지금 이 시간에도 타인의 도움 없이 오롯이 혼자 힘으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특히 노산 엄마들에게 진심을 담은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세 아이의 엄마

김보영